- 징기스칸의 전략에 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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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의 전략에 관한 분석 김 충 녕 / 교수 국방대학원 1995년 말에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세계사에서 지난 1천년간 가장 중요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꼽았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징기스칸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님이 알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는 징기스칸이 참여한 주요 전투를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분석하여, 그가 천재적인 전술 및 전략가임과 동시에 현실에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철저한 현실주의적인 인물임을 밝힌 내용으로 지면 관계상 4회로 연재한다. 서론 13세기에 유라시아 대륙의 환경을 살펴보면 서양 국가들은 가톨릭 체제, 중동 국가들은 이슬람 체제 그리고 동양 국가들은 불교 및 유교 체제에서 안주하고 있을 때 몽골은 생존을 위해 부족간 투쟁이 극심했다. 징기스칸은 먼저 악전고투 끝에 몽골족을 통합하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서하(西夏)를 다독거리고 금나라를 남쪽으로 몰고 오트라르 성주가 대상을 죽이고 물품을 약탈하자 이를 징계하기 위해 서정(西征)길에 올라 7년여에 걸쳐서 호라즘 왕국을 초토화하고 배반한 서하를 치는 중에 병사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금나라를 정벌하는 전략을 알려주었고 그 뒤 그의 아들 오고타이와 투루이는 징기스칸의 전략을 따라 금나라를 점령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13세기 징기스칸이 몽골 기마병단을 이끌고 유라시아 대륙 동서남을 종횡무진 진격하여 저항하는 적을 단숨에 격퇴시킨 전략에 관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당시 몽골은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글을 몰랐다. 따라서 징기스칸의 기록은 위 구르(Ug-urs), 중국,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등의 역사 문서와 유럽인 여행자들의 기록에 드문드문 기재되어 있었다. 이렇게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징키스칸의 반대편 사람들이어서 징기스칸을 침략자로 보고 기록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는 잔인한 정복자로 기록에 남기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서하를 정벌하고 금나라 중도(中都 또는 燕京)를 점령하고, 호라즘 왕국을 정복하여 유사이래 영토가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인의 저력은 무엇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었던 징기스칸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한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국제 환경 동아시아 지역 정세를 보면 중국에는 907년에 당(唐)나라가 망하고 오대(五代)를 거쳐서 960년에 송(宋)나라가 건국되었다. 만주 지역에는 916년에 거란족이 요(遼)를 건국하여 926년에 발해를 멸하고 중국의 연운 16주(燕雲16州)를 장악했다. 1115년 금(金)나라가 일어나 요를 멸하고 1127년에 북송(北宋)을 멸하였다. 그래서 송나라는 임안(臨安, 지금 南京)에 도읍하여 남송(南宋) 정권을 수립했다. 한반도에서는 918년 고려가 일어나 935년 신라를 통합했다. 중국 서쪽에는 1038년에 당구트족(黨項族)의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를 건국했다. 그래서 1150년 이후 고려, 금, 송, 그리고 서하가 서로 화친하면서 평화공존을 누리고 있었다. 이슬람 제국은 1031년에 코르도바의 우마이야조가 멸망하고, 바그다드의 압바스조는 분열되어 안정을 잃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고 1037년 셀즈크조가 일시 강성했으나 명재상 니삼(Nisam al-Maulk, ?-1092)이 암살된 후 갑자기 쇠약해졌다. 유럽에서 911년에서 987년 사이에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의 이동이 있어서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었고 외부적으로 이슬람(사라센) 제국의 침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나 마자르족의 침입을 중...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vazilisk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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